의료계 '의사 고유영역 붕괴' 격분
한의사에 현대의료기기 허용 '반발'... 국민건강 위협 우려
의학신문 김현기 기자
의료계가 한의사에게 일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비의료인에게 척추교정이나 예술문신 등을 허용하는 정부방침이 의사 고유영역을 붕괴시켜 결국 국민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8일 보건의료분야 개선안을 통해 한의사에게 일부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등 양·한방 협진을 통한 한의산업 과학화 및 현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미용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미용기기분류’를 신설해 미용사에게 일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재 법으로 금지된 비의료인의 척추교정치료(카이로프랙틱 닥터)와 예술문신도 정식의료인으로 인정해 허용된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사들의 영역이 침범당하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비의료인의 영역확대가 국민 건강의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개협, 모든 수단 동원 개선안 막겠다
의원협, 명백한 의료왜곡…문제제기할 것
특히 한의사에게 일부 현대 의료기기를 허용하는데 대해 개원가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가 대안 마련을 위해 의료기기별로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를 명확화하는 것은 물론 양·한방 이원화 체계 하에서 보험적용여부도 신중히 검토한다지만 결국 현대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자체가 학문적으로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일중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 회장은 “학문적으로 베이스가 다른데 현대의학을 기초로 만든 의료기기를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물론 운전면허가 없다고 해서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결국 책임은 국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대개협은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개선안을 막아내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원협회(의원협)에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정부가 개선안을 강행할 시 강력히 문제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윤용선 회장은 “의료기기가 현대의학의 원리가 기반인데 한의사들에게 허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며 “한의계에서 ‘어부도 초음파를 하고, 공항직원이 엑스레이를 사용한다’며 우리는 왜 사용하지 못하냐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어부와 공항직원이 환자를 진단하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보건의료계와 관련된 문제를 단순히 자본논리에 의해 규제완화라는 명제에 부합시키기 위해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명백한 의료왜곡”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카이로프랙틱, 문신과 관련해서도 윤 회장은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하나의 규제로 볼 것이 아니다. 행위 자체에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며 “비의료인에게 규제를 풀어준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외과, 도수치료 근거 부족…연구 필수적
피부과, 문신 비의료인 허용 절대 불가
카이로프랙틱, 문신 등 비의료인의 시술과 관련 피부과, 정형외과 등 관련과의 반발도 잇따랐다.
카이로프랙틱 합법화의 경우 물리치료사뿐만 아니라 헬스 트레이너 등 학원의 활성화로 일반인도 가세해 전국의 척추교정원이 난립해 국민 건강에 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용훈 정형외과의사회장은 “척추교정치료의 경우 의학적 근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교육과정 등 연구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경우만 해도 카이로프랙틱 닥터는 6년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또 “대한의사협회,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등과 도수치료 과정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었다”며 “의료계와 논의도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을 허용하는 안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기존 학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기존 비의료인 문신 허용을 반대해 왔던 피부과의사회도 이번 개선안과 관련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강력한 대응의지를 내비쳤다.
임인석 피부과의사회장은 “문신사 등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허용은 앞서 국회를 통해 문신사 양성화를 골자로 대표발의 되는 등 허용 움직임이 가시화된 바 있다”며 “전과동일하게 비의료인의 유사 의료행위 허용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문신은 피부침습이 이뤄지는 명백한 의료행위로 비의료인에게 이를 허용하는 것 자체가 절대로 불가하다는 게 임 회장의 입장이다.
임 회장은 “문신은 바늘을 이용한 피부침습행위로 소독미비로 인한 감염, 흉터와 육아종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무엇보다 피부는 각질, 표피, 진피 등으로 구분되는데 의료지식이 없는 문신사가 진피까지 문신액을 침습하면 의료행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용사에게 일부 의료기기를 허용하는 개선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임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용기기라는 분류를 따로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며 “미용기기 별도 분류는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물론 현재 피부미용사들의 불법적인 의료기기 사용으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용기기’분류 신설의 근거로 미용관광산업활성화를 들고 있으나, 관광객들은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용관광산업활성화를 위해서는 ‘미용기기’분류 신설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관광’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피부미용사의 ‘의료기관’ 취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같이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정부의 이번 보건의료분야 개선안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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