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확산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메르스 의심환자를 늦게 신고하는 의료인에 대해서 관련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초기에 늦장대응으로 메르스 확산을 방치해 놓고 그 책임을 의료인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참에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없애고 본연의 업무인 질병 예방과 감염병 관리에 치중할 수 있도록 기능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의원협회는 1일 성명서를 내고 "보건복지부의 초동대처가 확산을 키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이 늑장 신고를 하는 바람에 메르스 감염이 더욱 확산됐다며 신고를 늦게하는 의료인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법' 규정을 적용해 200만원의 벌금에 처할 것이라고 공표했다"며 "이는 민간의료기관에 국가적 전염병 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한심한 작태"라고 비난했다.

의료인이 메르스 의심환자를 신고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확인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무시하고 보건당국이 의료기관에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떠넘기려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의료인이 의심환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전 14일 이내에 중동지역 여행 유무,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자와 밀접하게 접촉 여부, 중동지역 의료기관에 직원, 환자, 방문자로 있었는지의 여부 등을 확인해야한다"며 "특히 메르스로 진단된 환자와의 접촉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특히 확진 환자의 신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확인절차를 충족하지 않을 경우 의심환자를 정확히 발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원협회의 주장이다.

의원협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환자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 벌금형에 처하겠다는 건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그 책임을 의료인에게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라며 "이런 태도는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복지부의 허술한 전염병관리대책 및 민간의료기관을 강제적으로 거점병원으로 지정해 의료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전염병 치료를 맡겼던 엉터리 대책을 또다시 답습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메르스 환자에게 노출되어 자신들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진료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인의 노고를 위로하기는 커녕 벌금형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는 보건당국 공무원들의 한심한 작태를 규탄하고, 그 발언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한편 메르스 관리 및 방역에 실패한 복지부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보건소가 본연의 업무인 질병 예방 및 전염병 관리에 주력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국의사총연합은 1일 성명서를 통해 "5월 20일 이후 현재까지 메르스 확진환자는 18명으로 늘었고, 의심 환자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방역 시스템의 총체적인 부실과 비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보건 관리체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지적했다.

전의총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전염병 관리에 무능함을 드러낸 정부는 이후 전문가 집단과의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바로 잡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안이한 생각과 대처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더욱 황당한 건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 방역 시스템과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의심환자 신고를 게을리할 경우 의료인과 환자 본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의 처벌만 강화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애초에 해외유입 감염병에 대한 안이한 대처와 국가 방역체계의 구조적 문제로 메르스가 확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보건당국이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도 없이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무리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질병 예방과 전염병 관리 업무에 치중해야 할 보건소가 진료 기능을 확대하면서 민간의료기관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면서 지금과 같은 감염병 관리 부실 사태를 키워다고 지적했다.

전의총은 "정부는 이번 메르스 관리 및 방역에 실패한 복지부 장관 및 책임자들을 일벌백계하고, 그 동안 보건 및 방역 시스템에서의 정부의 실패를 인정하며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메르스 관련 실효성 없는 처벌 일변도의 대책을 즉각 철회하고, 지금이라도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사태 해결에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국민 건강 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독립하고, 의사 등 보건의료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해야 한다"며 "지자체의 선심성 공약의 도구로 전락한 보건소를 지자체에서 독립해 진료 기능은 없애고 본연의 업무인 질병 예방 및 전염병 관리에만 주력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