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진료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여야가 구성키로 한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사태의 본질을 전혀 파악 못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발언으로 이제는 정부뿐 아니라 여당까지 헛발질을 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반문하고 싶다. 메르스 감염이 있었던 다른 국가들은 원격진료 시스템이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메르스를 잘 극복했는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창궐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만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도,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원격진료 운운하고 있다. 한 국가 여당의 중추적 인물이라는 자의 입에서 저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메르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의 첫 번째는 바로 정치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보건의료를 복지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선거를 위해 보건의료를 인기영합주의적으로 이용하며 보건의료를 왜곡시킨 장본인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저마다 국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펴는 양 일관성 없는 보장성 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며 보건의료를 선거에 이용한 반면, 정작 보건분야의 예산은 전체 보건복지 예산의 불과 4%만 배정했던 주역들이 바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보건분야 전문가가 장관에 임명된 예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메르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또 하나의 원인은 저수가에 의한 기형적이고 후진적인 의료시스템이다. 저수가에 의해 병원 경영이 악화되니 환기시설이나 배기시설이 제대로 된 입원실을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며, 대형병원 응급실은 붕괴된 의료전달 체계에 의해 언제나 환자들로 넘쳐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형적이고 후진적인 의료시스템이 메르스를 쉽게 전파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공공의료의 명확한 역할정립이 안된 것도 메르스 사태의 원인이다. 우리나라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도구로 전락되어 전염병의 예방이나 치료보다는 일반 환자 진료에 매진하며 민간의료기관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공립병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 역시 명확한 위상이 정립되지 않다보니 전염병 확산과 같은 상황에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전체 의료기관의 93%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에 의심환자 미신고시 벌금형으로 처분하고 환자 진료 거부시 의료법에 의거하여 처벌하겠다며, 오히려 민간의료기관을 공공의료기관인 양 취급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예 부리듯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부의 정치적 사고방식이 메르스 확산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하여 최선의 방역대책을 세웠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제대로 된 방역을 못함으로써 화를 키웠다.
이렇듯 이번 메르스 사태의 원인은 보건의료의 본질을 무시한 복지정책, 저수가에 의한 기형적이고 후진적인 의료시스템, 공공의료 시스템의 부재,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부의 잘못된 행태 등임에도, 이러한 근본적 원인들은 무시하고 뜬금없이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며 발언하는 유승민 원내대표는 제정신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견지하는 한,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는 다시 재발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유발했는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메르스 사태로 인해 전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여당의 한심한 행태에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을 짐작게 한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핵심은 위에 열거된 많은 원인 중 수준미달의 정치인들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이다.
이에 본 회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원격의료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적인 발언 취소를 요구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차후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할 것이며,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언행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킨다면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결과의 책임은 오롯이 정부와 여당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할 것이다.
2015년 6월 9일
바른 의료 국민과 함께
대 한 의 원 협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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