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수술환자 안전관리 비용을 의원급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것은 일차의료 죽이기와 다를 바 없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수술환자 및 요양병원 입원환자 안전을 강화한 의료법 시행규칙을 공포하였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술실에는 기도 내 삽관유지장치, 인공호흡기, 마취환자의 호흡감시장치, 심전도 모니터 장치, 예비전원설비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였는데, 문제는 이러한 설비에 드는 비용을 모두 의료기관 스스로 부담하라는 것이다.
특히 분만을 하는 29병상 이하의 산부인과 의원의 경우 임상과의 특성상 수술실을 같이 운영하여야 하는데, 가뜩이나 열악한 분만 수가 및 무과실 분만사고 30% 배상이라는 엉터리 제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국민건강에 이바지하여 왔던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상기의 설비를 갖추는 데 적게는 8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3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차라리 이럴 바에는 수술실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과계열의 개원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엄격한 시설을 요구하고 그에 따른 제반경비를 의료기관 스스로 부담하라는 것은, 굳이 병원급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의원급에서 할 수 있는 수술도 이제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본 회는 수술환자 안전을 위한 설비 강화라는 대원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 안전을 위한 설비는 국민건강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이미 원가의 70% 대에 불과한 낮은 수가에 신음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게 또다시 비용 폭탄을 안기는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이 세금을 낼 때는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 취급을 하고, 낮은 수가나 부당한 행정처분에 항의할 때는 의료가 공공재라 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강변한다. 의료가 공공재라 우기는 이 나라 정부는 90%가 넘는 민간의료기관에 이제껏 재정적 지원을 단 한 푼도 한 적이 없다.
손 안대고 코푸는 식으로 의료기관에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의 한심한 작태는 반드시 비난 받아야 한다. 수가는 제자리이고 비용부담만 커지는 것은 당연히 의료기관의 경영악화로 귀결될 것이며,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당장 생존권의 문제에 직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건강을 위해 일차의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의원급 의료기관을 죽이는 정책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는 더 이상 정부로서의 자격이 없다.
정부는 위와 같은 제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직접 부담하라. 만약 비용을 대지 못하겠다면 비용발생에 대해 의료수가에 반영하거나 아니면 별도의 수가로 보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비용도 대지 못하고 수가로 반영할 수도 없다면 차라리 모든 정책을 폐기하라. 몰상식한 정책으로 일차의료기관이 붕괴되고 국민건강권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잘못된 정책을 시행한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1일
바른 의료 국민과 함께
대 한 의 원 협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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